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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닥터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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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의 사사로운 글쓰기

말 잘 하기

by DoctorChoi 2023. 1. 16.

 

요즘 영어로 말 하는 일이 무척 많아졌습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에 외국인이 두 명 있고, 프레젠테이션, 연설이나 그 밖에 여러 가지 일로 영어로 말하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원래 말 수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저로서는, 요즘 대화의 절반 이상이 영어로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떨 땐 영어가 꼭 필요하지 않은 상황 - 한국인 룸메이트와의 대화, 친구와의 전화 통화 심지어 기도!- 에서도 저도 모르게 영어가 튀어나와 적잖이 난감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영어를 쓸 일이 많다 보디 자연히 말 하는 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다른 사람과 음성 언어로 의사 소통하는 방법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제 주변에 어떤 분은 언제나 찬찬히 차분히 말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언제나 귀 기울여 듣습니다. 그리고 그 말에 공감하고 미소를 짓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러 사람 앞에서 화제를 이끌어 가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도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 모두에게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김제동씨 마냥 자신을 낮추거나 망가지거나 스스로 무너지는 방식으로 유머를 사용해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합니다. 그런 사람 옆에 있으면 은근히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그래도 비꼬거나 비난하지 않기 때문에 즐겁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여러 명이 함께 있을 때에도 오로지 옆에 있는 사람과만 이야기 합니다. 자기 좋아하는 이야기만 하기 때문에 늘 같은 사람과만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언제나 시니컬하기 때문에, 또 어떤 사람은 야한 이야기 빼면 대화가 안되기 때문에 옆에 있는 것조차 거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이 거의 폭력입니다. 일단 무지하게 빨리 말하는데 잘 알아듣기가 힘듭니다. 문장 종류에 관계 없이 -평서문이나 의문문이나 청유문이나- 전부 명령문으로 들립니다. 방금 그 사람이 한 말이 농담이라는 거 뻔히 알면서도 기분이 상하고, 그 사람의 칭찬을 듣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괜시리 화가 납니다.

 

이런 차이는 상당 부분 언어 습관이나 표현의 차이에서 생깁니다. 같은 행동을 촉구하거나 동일한 의사를 표현하더라도 그 강도는 어떤 표현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Probably 다르고 perhaps 다르고 maybe 다릅니다. Must 다르고 should 다르고 have to 다르고 ought to 다르고 need to 다르고 had better 다릅니다. 언제나 강성 일변도로 must만 쓰면 듣는 사람과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은 지칩니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납니다. 부사 하나 끼워 넣는 거, please 한마디 붙이는 거. 그 차이에 말이 확 달라집니다. Mister냐 Sir냐 Doctor냐, 성을 부르느냐 이름을 부르느냐, 호칭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입니다. 심지어, Yes 다르고 Yeah 다릅니다. 갱스터 영화나 코미디 영화에 나오는 영어를 회의에서나 연설에서나 종교 행사에서 사용한다면 얼마나 어이가 없겠습니까.

 

하지만 말하는 기술은 언어 실력보다는 마음에 주로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말 한마디 하기 위해서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심리적 절차를 거치는지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대한 TV토론이나 당대변인 논평을 들어보면 언어 폭력의 진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힘을 북돋워 주려는 사려 깊은 마음이 아니라 깎아내리고 힘을 과시하고 짓밟으려는 의도가 있으면 당연히 말도 그렇게 나옵니다. "당신들이 악한데 어떻게 선한 것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라는 오래된 말이 생각납니다. 딱히 의도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악하지 않더라도 은근한 우월의식이나 적대감은 말에 다 배어 나오기 마련입니다. 또, 언제나 대화를 독점하거나, 자기 방식대로 몰고 가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주의 깊이 듣기보다는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식으로 아집과 독선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갈구는' 말, '쫑크 먹이는' 말, '씹는' 말... 욕설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언제나 고운 말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혹시 이런 사람 보셨습니까? 몇 마디 말로 대립과 반목의 골을 풀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는 사람. 떼쓰는 아이와 간단히 평화 협상을 할 수 있는 사람. 슬픔에 싸인 벗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온화한 말로도 마음을 움직여 행동을 촉구할 수 있는 사람. 진리의 핵심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는 사람. 흉금을 털어 놓는 대화로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 어디 없을까요?

 

2005년 7월 18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