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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의 사사로운 글쓰기

"불장난의 추억" - 잡지 투고 글

by DoctorChoi 2023. 1. 19.

함께 사는 세상 2004년 1월호

 

불장난의 추억

최OO (25세)-한국과학기술원 생명화학공학과 석사 과정


일곱 살 꼬마였던 나는 유난히 불장난을 좋아했다. 집에 돌아다니는 ‘아리랑 성냥’ 한 갑만 있으면, 이 오묘하고 신비로운 놀이를 즐기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때로는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댁이나 이모네에 놀러가서 가마솥 아궁이 옆에 앉아 합법적인(?) 불장난을 할 수도 있었지만, 역시 불장난은 그 엄격한 금지 때문에 비밀스런 것이 제 맛이었다. 눈에 보이는 종이조각과 나무 조각, 마른 풀 등을 모아 조그마한 불을 지피는 재미는 몰래 하는 것이기에 더욱 재미있었고, 함께 불장난을 감행할 친구가 있어도 좋았지만, 혼자 불장난을 하더라도 그 재미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불의 빛깔과 타들어가는 나뭇가지에서 나오는 냄새와 연기와 온기, 그리고 다 타고 남은 것들의 시꺼먼 색깔까지... 난 이 산화반응을 일으키고, 지켜보는 것이 마냥 신기했고 재미있었다.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올 땐, 옷에 구석구석 밴 불냄새를 없앤다고 웃옷을 벗어 빙빙 돌리며 달려오곤 했었다.

불을 잘 붙이기 위해서는 불이 잘 붙는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어느 날 나는 정환이라는 동갑내기 친구 녀석과 함께 비닐봉지를 모아서 불장난을 위한 비밀장소인 아파트 지하실로 숨어들었다. 어두컴컴하고 특유의 지하실 냄새가 나긴했지만, 들킬 일 없이 이 재미난 장난을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이 장소였다. 성냥갑에서 성냥을 꺼내들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지익’하고 그어 불을 일으킨 다음, 비닐봉지에 붙이자 쾌쾌한 냄새와 검은 연기를 동반하고서 비닐봉지는 잘도 타들어 갔다. 불꽃을 일으키며 부글부글 거품을 내며 타들어가던 모습을 얼마간 감상하던 중! 아뿔사! 무언가 뜨끈한 것이 내 손등에 떨어졌다. 녹아내린 비닐봉지가 한 방울 내 왼손 둘째손가락 위로 떨어진 것이다! 순간 눈물이 찔끔 나왔고, 난 손을 흔들며, 그 뜨거운 것을 내 몸에서 떼어 내려고 했다. 재빨리 무언가로 닦아낸다고 닦아냈지만, 그 비닐봉지 녹은 방울은 이미 내 손등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채 차갑게 식어있었다. 아프고 따가운 것도 괴로웠지만, 금지된 장난과 그로인한 상처 자국은 부모님께서 날 무섭게 혼내실 의문의 여지가 없는 증거였기에 더욱 괴로웠다.


나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길에서 놀다가 넘어져서 바닥에 손을 긁히는 바람에 그 마찰열(?)로 손에 화상이 생겼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지만, 그건 어른이라면 누가 봐도 뻔한 거짓말이었다. 이웃에 살던 아주머니가 내 손을 보고 놀라며, 무슨 약을 발라주고 거즈 같은 것을 대어 주었고, 난 겁에 질리고 불안한 마음을 안고 우리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때 얼마나 많이 혼났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직도 그때의 당혹감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날 이후로 불장난을 다시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기억도 있다. 그 화상 자국은 내 왼손 위에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어, 그 한방울의 뜨거운 액체가 어디에 떨어져서 얼마만큼 번졌는지 정확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참고로, 우리 아버지는 30년 넘게 소방관이시고, 나는 화공과 석사과정에 있고, 비닐과 같은 플라스틱 물질들도 연구하고 있다. 불과 비닐봉지와 나의 묘한 인연일까.


2004년 2월 2일에 씀